주의와 그 기능
깨어 있을 때, 우리의 감각기관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제 할 일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따라서 감각기관을 통해 수집되는 순간순간의 정보는 실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의식하는 정보는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읽는 동안 여러분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단어와 그 앞의 내용뿐일 것이지만 바로 이 순간에도 여러분 시야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망막을 자극하고 입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시각기관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중 극히 일부만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어진 순간에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수많은 자극 중 일부에만 선별적으로 의식을 집중하는 과정을 주의
또는 주의집중이라 합니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주의집중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우리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처리한다는 점입니다.
주의집중 전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정보 처리를 우리는 전주의적 처리라고 합니다. 전주의적 처리가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주의 집중을 통해 불필요한 자극은 미리 걸러내고 필요한 자극에만 몰두함으로써, 우리는 이들 자극 속에 있는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집중이 가져다주는 지각의 효율성도 아무런 대가 없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던 것이 실제로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대상의 중요성은 그 장면과 그 당시 관찰자의 생리적 상태, 그리고 그 장면에 관한 관찰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지각과정에 원용되는 관찰자의 생리적 상태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며 지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자극에 대한 지각 경험도 시간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다르므로 지각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오류와 오해의 위험도 커집니다.
앞에서는 주의가 마치 관찰자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만 통제되는 것처럼 설명하였지만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큰 소리를 지르면, 책에 집중되었던 주의가 소리 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관찰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또는 의도에 반하여 주의를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의 초점은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지만 환경 자극의 속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의가 관찰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소리 나는 곳으로 옮겨가는 이유를 고려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주의를 집중한 후에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 또는 그 소리 출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의를 집중하여 소리를 생성한 일 또는 대상을 보다 정밀하게 처리함으로써 그 일이나 대상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의집중의 기능은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자극 중 중요한 것을 선별하는 일과 선별된 신호 속에 담긴 정보의 처리를 촉진하는 일입니다.
지각 조직화
주의집중을 통해 관심 대상이 선정되면, 그 대상을 구성하는 요소를 보다 큰 단위로 묶는 작업이 전개되는데, 이 과정을 지각 조직화라 합니다.
우리의 지각 체계는 감각과정에서 분석해 낸 단위 요소를 집단으로 묶어 내는 조직화 작업을 통해 시야에 펼쳐진 물체의 모양을 구축해 냅니다. 지각 체계의 존재 목적 중 하나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대상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고,
대상의 정체는 주로 그 대상의 모양을 기초로 파악되며, 대상의 형태는 그 대상의 구성 요소를 조직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상의 정체 파악 과정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구성하는 요소가 조직화하는 과정, 즉 지각 조직화 과정을 밝혀야 합니다. 대상의 구성 요소는 감각과정에서 분석됩니다.
지각 조직화 과정은 베르트하이머, 쾰러, 코프카로 대표되는 형태주의 심리학자에 의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습니다. 형태주의 심리학자에 의하면, 우리는 여러 개의 작은 요소가 있으면 그들을 묶어 하나의 통합된 형태로 지각하려는 강한 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또한 그들은 이 조직화 경향성이 일정한 원리를 따라 발현된다고 믿었는데, 이 법칙을 지각 조직화 법칙이라 합니다. 이들 법칙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최선의 법칙
지각 조직화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 중 가장 일반적인 법칙이 최선의 법칙입니다. 최선의 법칙은 특정 대상을 지각할 때 가능한 한 가장 좋은 형태로 경험하려는 것입니다. 이 법칙에서 말하는 좋은 이란 규칙적인, 정돈된, 단순한, 대칭적인 등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지각의 단순화 경향성은 지각과정이 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지각의 경제성은 우리는 세상을 가장 단순하게 지각하려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것과 우리의 지각적 판단은 가장 두드러진 단서 몇 개만을 이용하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것으로 압축됩니다. 결국 지각 경제성은 지각의 단순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각의 최소화 경향성 또는 최소 원리에 따른 지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으며 형태주의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최선의 법칙도 이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경-배경 분리
시야에는 수많은 대상이 널려 있는데, 우리의 시각 체계는 동시에 그 모든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순간순간의 조건에 따라 많은 대상 중 특정 대상만을 선별하여 선택된 대상만을 관찰할 필요성이 생기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특정 대상과 그 배후의 대상을 분리하는 경향성을 통해 이 필요성을 충족하는 것 같습니다.
선택된 대상을 전경 그리고 그 배후의 대상을 배경으로 구분하는 이 경향성을 형태주의 심리학자들은 전경-배경 분리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처럼 지각 경험이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만으로 결정된다면 결코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각 경험은 감각기관을 통한 입력 정보를 세상에 관한 지식을 기초로 해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감각 정보를 분석하는 상향 처리와 기존의 지식을 기초로 그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향 처리의 결과로 지각 경험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라는 말은 지각 과정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는 좋은 예입니다.
한글을 알든 모르든 한 자루의 낫을 눈앞에 둔 사람의 감각 정보 처리 결과, 즉 상향 처리의 결과는 동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즉 '기역자' 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하향 처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글을 알아야만 합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같은 식으로 설명됩니다.
자극에 대한 상향 처리 결과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지각의 과정이다. 감각처리 결과에다 의미를 부여할 지식이 없으면, 지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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